디지털 아트 이전에도 있었던 프렉탈 패턴의 미학은 오늘날 수학적 알고리즘을 통해 생성되는 이미지들이 실제로는 오래된 미술사의 문맥 안에 존재했다는 사실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컴퓨터 그래픽의 산물로 여기는 복잡한 기하학적 반복 구조 즉 프렉탈은 이미 고대의 장식 예술, 종교 미술, 심지어 자연을 관찰한 고전 회화 속에도 등장한다. 이 글에서는 프렉탈 패턴의 개념을 바탕으로, 디지털 이전의 예술에서 어떻게 이 반복과 자기유사성이 미적 언어로 활용되었는지 네 가지 사례로 살펴본다.
1.이슬람 기하학 문양인 무한 반복의 시각화
중세 이슬람 건축에서 볼 수 있는 모자이크와 아라베스크 문양은 프렉탈 구조의 전형이다. 이슬람 예술은 우상 숭배 금지로 인해 인물화를 피했지만 대신 수학적으로 설계된 반복 문양을 통해 신의 무한성을 표현했다. 예를 들어 페르시아 사원의 타일 문양이나 알함브라 궁전의 벽면을 보면 중심 패턴이 작은 단위로 분할되고 그것이 다시 같은 구조로 확장되는 자기유사성의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이는 현대 수학에서 정의하는 프렉탈의 핵심 개념과 정확히 일치한다. 당시 장인들은 컴퓨터 없이도 손과 자, 나침반만으로 이러한 수학적 구조를 구현했다. 이 점에서 이슬람 기하학 문양은 디지털 시대보다 앞선 수학적 예술이라 부를 만하다.
2.동양의 산수화인 자연의 프렉탈을 그리다
중국과 한국의 고전 산수화에서도 프렉탈적 특성이 자주 등장한다. 산의 능선, 나무의 가지, 강의 흐름 같은 요소들이 일정한 구조 속에서 반복적으로 그려진다. 예를 들어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를 보면 가까이 있는 바위나 멀리 있는 산맥이 유사한 곡선과 윤곽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자연 속에서 관찰되는 자기유사성 즉 프렉탈 구조의 시각적 구현이다. 이러한 구성은 단지 실제와 닮게 그리는 재현의 기법이 아니라 자연의 원리를 체화한 시각 언어로 해석할 수 있다. 서양의 원근법과 달리 동양 화법은 시점을 고정하지 않고 유동적인 구성을 선호했기 때문에 프렉탈의 무한 반복성과 더 유사한 시각 경험을 제공한다.
3.고딕 성당의 창문과 프렉탈 구조 알아보기
서양 중세 고딕 성당의 로즈 윈도는 프렉탈 패턴의 또 다른 사례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나 샤르트르 대성당의 장미창을 보면 중심에서 시작된 도형이 점차 확장되며 일정한 비율로 반복되는 구조를 이룬다. 이 창문들은 단지 장식적인 요소가 아니라 하늘의 질서와 신의 조화를 상징하는 수학적 상징체계였다. 특히 점점 작아지는 문양들이 동일한 형태를 유지하며 반복될 때 시각적 깊이와 신비감을 동시에 전달한다. 이 패턴은 현대 프렉탈 그래픽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정교하며 그 안에는 중세 장인들의 공간 감각과 수학적 직관이 녹아 있다.
4.르네상스 이후 과학화된 자연 묘사 속의 반복
르네상스 이후 과학적 관찰이 강화되면서 화가들은 자연의 구조를 점점 더 정밀하게 묘사하려 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식물 드로잉이나 근대 식물도감에서는 잎맥의 분지 구조 나뭇가지의 분기 방식 등에서 프렉탈 구조가 관찰된다. 특히 나뭇가지의 분기 각도 꽃잎의 배열은 오늘날 프렉탈 수학에서 다루는 골든 앵글이나 피보나치 수열과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 이러한 관찰은 의도적인 디자인이라기보다는 자연의 구조를 충실히 기록하다 보니 자연스레 나타난 결과였다. 이 점에서 프렉탈 패턴은 예술가의 창작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의 설계이자 예술로 볼 수 있다.
프렉탈은 단지 현대 디지털 아트의 유행이 아니다. 오히려 그 뿌리는 이슬람 건축, 동양 회화, 고딕 성당, 르네상스 과학 드로잉 등 아날로그 시대의 다양한 예술 속에 존재했다. 디지털이라는 도구가 없던 시대에도 인간은 손끝과 눈으로 수학적 구조를 발견하고 반복했고 그 반복 속에서 미의 질서를 찾아냈다. 디지털 아트 이전에도 있었던 프렉탈 패턴의 미학은 결국 인간이 자연을 통해 배우고 구현해온 시각 언어의 역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