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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정물화에 그려진 유리병으로 본 굴절률 1.5의 시각 트릭

by joynday 2025. 7. 2.

18세기 정물화에 그려진 유리병, 굴절률 1.5의 시각 트릭은 단순한 회화적 기교의 차원을 넘어서 빛의 물리학과 미술사적 관찰이 교차하는 영역에 속한다. 이 글에서는 18세기 유럽 정물화 속 유리병 표현이 어떻게 시각적 착시를 유도하며,그 기저에 어떤 물리적 법칙과 회화적 계산이 숨어 있는지를 분석한다.

18세기 정물화에 그려진 유리병으로 본 굴절률
18세기 정물화에 그려진 유리병으로 본 굴절률

 

 

1.굴절률 1.5라는 물리적 수치의 회화적 의미

18세기 정물화에 그려진 유리병이 유독 사실적이고 입체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단순히 작가의 기술력 때문만이 아니다. 이 유리병이 가진 굴절률을 정확히 이해하고 시각적으로 환산해낸 회화적 계산 덕분이다. 일반적인 소다석회유리의 굴절률은 약 1.5로 이는 공기(1.0)에서 유리로 빛이 통과할 때 그 경로가 꺾이는 각도를 결정짓는 물리적 지표다.

굴절률 1.5는 우리가 보는 세계를 왜곡하면서도 동시에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시각 트릭을 유도한다. 유리병 너머의 사물은 굴절과 왜곡 확대와 축소의 조합으로 형태가 미묘하게 달라지며 그 왜곡을 정밀하게 포착한 회화는 오히려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즉 굴절의 과학은 회화의 사실성을 조율하는 도구가 된다.

18세기 작가들은 광학적 정식이 확립되기 이전임에도 불구하고 직관과 관찰을 통해 이 물리적 수치를 감각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병의 두께에 따라 굴절률이 다르게 보이고 액체가 차 있는 상태인지 아닌지에 따라 왜곡의 강도가 달라지는 현상은, 작품 속에서 놀라운 정밀도로 재현된다.

2.유리병을 그리는 회화적 전략: 경계, 왜곡, 하이라이트

정물화 속 유리병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윤곽을 잡는 것을 넘어 유리라는 물질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효과를 이해하고 회화적으로 번역할 수 있어야 한다. 18세기 화가들은 다음과 같은 전략을 사용했다.

첫째, 경계선의 이중성을 활용한다. 유리병의 외곽선은 주변 배경의 색에 따라 미세하게 다르게 표현되며 빛의 굴절로 인해 경계는 고르게 닫히지 않는다. 작가는 선을 명확하게 그리지 않되 미세한 밝기 차와 색 번짐으로 유리의 윤곽을 만들어낸다.

둘째, 병을 통해 보이는 배경의 왜곡을 그린다. 병 뒤의 배경이 일그러지거나 늘어나 보이는 현상은 굴절률로 인한 시각 변형이며 이 왜곡은 병의 곡률과 시점에 따라 달라진다. 18세기 회화에서는 이 왜곡을 기하학적으로 분석하지 않았지만 병의 중심과 주변에서의 배경 왜곡을 다르게 표현함으로써 더욱 입체적인 시각 효과를 구현한다.

셋째, 하이라이트와 내부 반사를 계산한다. 유리병 표면에 맺히는 빛의 반사는 단순한 흰 점이 아니라 광원 위치와 병의 곡률에 따라 위치와 형태가 달라진다. 특히 액체가 병 안에 있을 경우 반사와 굴절이 이중으로 발생하며 내부에서 흐릿한 반영이 나타난다. 작가들은 이러한 미묘한 조도를 여러 번 덧칠하는 기법으로 시각적 깊이를 부여한다.

 

3.정물화에 숨어 있는 광학 실험실

18세기 유럽의 정물화는 단순한 장식 회화가 아니었다. 특히 네덜란드와 프랑스의 화가들은 유리병, 수정잔, 유리컵 등을 반복적으로 그리며 광학적 실험을 회화 안에서 수행하고 있었다. 이들은 렌즈 효과, 빛의 투과, 색 분산, 내부 반사 등을 시각적으로 탐구했고, 이는 오늘날의 광학 실험실과 유사한 역할을 했다.

대표적인 예로, 장 밥티스트 시메옹 샤르댕의 정물화에는 굴절과 투명의 감각이 섬세하게 담겨 있으며 유리병 안의 액체가 마치 실험관 속 용액처럼 보일 만큼 조명이 계산되어 있다. 또한 프란스 스네이더르스의 정물화에서는 배경과 병의 상호작용이 하나의 물리 현상처럼 묘사된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회화적 성취가 과학 이전의 과학이라는 점이다. 화가는 실험 장비 없이 빛의 경로와 굴절 효과를 시각적으로 계산했고 그 결과는 광학 연구에 선행하는 형태로 기록되었다. 정물화는 따라서 18세기 지식 생산의 장이었으며 미학과 물리학이 만나는 접점이었다.

 

4.회화로 본 빛의 물리학,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읽기

오늘날 물리학은 굴절률을 공식과 수치로 설명하지만 회화는 여전히 시각적 체험을 통해 그것을 전달한다. 18세기 유리병 회화는 시각 지각의 오묘함과 그것을 해석하는 인간의 인지 능력을 동시에 드러낸다.

현대의 시선에서 보면 이들 그림은 단지 정적인 사물의 묘사가 아니라 시간성과 시점의 중첩 그리고 관찰자의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광학 세계를 포착한 역동적인 실험이다. 즉 유리병은 정물 속의 정물이 아니라 눈이 어떻게 세계를 인식하는지를 시험하는 장치였던 것이다.

디지털 렌더링이나 컴퓨터 기반 광학 시뮬레이션이 가능한 시대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유리병 그림 앞에서 멈추게 된다. 왜곡된 배경 하이라이트의 미세한 흔들림 투명한 병 속 어둠의 농도는 공식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감각의 층위에서 시각 세계를 재해석하게 만든다.

18세기 화가들은 굴절률이란 단어를 몰랐을 수 있지만 그들은 굴절률 1.5가 만들어내는 세상의 부드러운 왜곡을 정확히 그려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손끝에서 물리학의 가장 감각적인 얼굴을 본다.